대학소개

Kangwon national university

우리는 강대인

  • 대학소개
  • 대학홍보
  • KNU소식
  • 우리는 강대인
  • 블로그 공유하기
대학소개>대학홍보>KNU소식>우리는강대인 상세보기 - , 제목, 내용, 조회수, 작성일등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지승공예가 나서환 명인(농생명산업학전공 2학년)
조회수 324 작성일 2021.12.30
다음은 본문삽입이미지 대체텍스트입니다.

한올 한올 혼을 담아 전통의 맥을 잇고, 한줄 한줄 배움으로 미래를 엮다
대학발전기금 2천만 원 쾌척, 지승공예가 나서환 명인(농생명산업학전공 2학년)
강원도 화천에서 평화의 댐으로 가는 길목에 우뚝 솟은 해산의 동쪽 자락, 그곳에는 육지 속 섬마을이라 불리는 비수구미마을이 있습니다. 아흔아홉 구비 산길을 넘어 배를 타고 호수까지 건너야 만날 수 있는 오지마을, 그곳에는 지승공예가 나서환 명인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지승공예의 명맥을 잇기 위해 40년이 넘는 세월을 묵묵히 지승공예가의 길을 걸어온 나서환 명인. 그는 많은 전통공예 중에서도 특히 더 많은 시간과 인내와 혼을 담아야 하는 작업으로 불리는 지승의 전통적 기법을 철저히 고수함으로써 작풍의 독보적 경지를 이루었고, 활발한 작품 활동과 국내외 전시, 교육활동 등을 통해 우리 전통의 멋과 가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통공예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많은 제자들까지 양성하고 있는 나서환 명인, 그런 그도 우리대학 캠퍼스를 들어서는 순간 꿈 많고 열정 넘치는 ‘대학생‘으로 돌변합니다. 삼대 째 가업을 이어 평생 지승공예가로 살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늘 못다피운 배움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던 그가 지난해 대학 입학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현재 농생명산업학전공 2학년에 재학 중인 ‘늦깎이 대학생‘이 된 것입니다. 60대의 나이에도 남들보다 두세 배 더 학업에 매진한 결과 연이어 성적우수장학금을 거머쥐었고, 세대 차이를 뛰어넘는 공감능력과 친화력으로 과대표까지 맡을 만큼 적극적으로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지난 12월 9일 대학발전기금으로 2천만 원을 쾌척하며 학교와 학과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학업의 꿈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학과 교수님과 동기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발전기금 기탁을 결정했다는 나서환 학생, 그는 요즘 ‘지승공예 명인‘이라 새겨진 명함보다 강원대학교 학생증을 내밀 때 더 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지승공예란?
‘지승‘은 길게 자른 한지를 꼬아 노끈을 만들고, 이를 촘촘히 엮어 그릇을 비롯한 각종 생활용품을 만드는 전통 공예기법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한지의 특성을 활용하는 우리 고유의 공예기술이다. 우리말로는 ‘노엮개‘라고 불린다.

지난 2017년 대한민국 지승공예 명인으로 지정돼 우리나라 전통 공예기술을 전승하고, 우수한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힘쓰고 계십니다. 지승공예가로서 최근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최근까지 계속해서 대학 생활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특히, 지난 10월 3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를 맞아 한국을 대표하는 전시에서 제 작품 세 점을 출품하게 되었습니다. G20 정상회의 전시를 통해 한국 대표문화를 소개하는 데 우리의 자랑스러운 지승공예를 알릴 기회가 되어 무척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전시 오픈이 기말고사 기간과 겹친 탓에 해외로 나갈 여력이 되지 않아 전시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쉽지만, 학생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지승공예는 흔히 끈기와 인내심의 산물이라 불립니다. 그만큼 많은 시간과 혼을 담아야 하는 지승공예가의 길을 선택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나고 자랐고, 할아버님부터 아버님까지 지승공예를 해오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집에서 필요한 것들을 지승으로 직접 만들어 쓰셨고, 아버지 역시 그 기술을 이어받아 지승공예가로 살아오셨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어릴때부터 지승공예품들을 생활 속에서 보고 접하며 자라왔고, 전통공예의 뛰어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전통공예가 그러하듯 지승공예도 한때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인 지승공예의 은은하면서도 강인한 아름다움, 전통적 기법의 가치를 되살려 명맥을 잇고 싶다는 일종의 소명의식으로 대를 이어 지승공예에 몸담게 되었죠.

예로부터 이름을 떨쳐 온 우리의 많은 전통 공예들은 현대화의 바람 속에서 점차 잊혀지고, 계승자를 찾지 못해 맥이 끊기기도합니다. 수십 년 넘게 묵묵히 지승공예에 매진할 수 있게 한 동력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취미처럼 작품 활동을 해왔는데,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방송에서 한국적인 것을 소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지승공예를 하는 것이 뜻깊은 일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고 본격적인 ‘업‘으로 삼았죠. 아버지에게 배워가며 옛 물건들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고, 1994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멍석 작품으로 특별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세상에 지승공예를 널리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다수의 대회에서 수상을 거듭했고, 국내외에서 여러 전시를 해 왔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지승공예를 가르칠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실 전통공예를 통해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전통공예 장인들은 생계 문제와 전승할 계승자를 찾기 어렵다는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전통공예품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설령 그 분야의 장인이라 해도 생활에 충분한 수준의 돈을 벌수 없는 현실입니다.
특히 지승공예는 다른 한지공예 보다 많은 전통한지 재료가 사용되는 만큼 재료 값도 상당하며, 그야말로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질 만큼 인고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분야라 작품의 값어치를 매기기가 어렵죠. 아마도 돈을 좇았다면 진작 포기했을 일이었겠죠. 그래서 저는 많은 전시를 열면서도 작품을 전혀 판매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작품을 모아 전시함으로써 전통을 계승 발전하고, 다음 세대에 명맥을 이어가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승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견오백지천년‘이란 말이 있습니다. 비단은 오백년을 가고, 한지는 천년을 간다는 말이죠. 세계적으로 유일
하게 천년 이상을 견디는 종이가 바로 한지입니다. 흔히 한지도 종이의 일종이니까 물에 풀어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지승처럼 종이를 끈으로 꼬아 엮은 후 완성된 작품에 옻칠이나 동백기름을 칠하면 완벽히 방수되면서 변질되거나 뒤틀리지 않아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볍고 탄력이 있으면서도 질기고, 보온성, 내구성, 유연성의 탁월한 성질 때문에 무궁무진한 생활용구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머릿속에 상상하고 그리는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우리만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죠. 역사 속 선조의 오랜 지혜가 녹아 있는 기법이며, 독특한 아름다움과 매력을 담고 있습니다. 지승공예는 우리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기법과 정서를 품은 것으로서, 단순히 효율성과 편의성을 추구하는 관점이 아닌 새로운 문화산업으로 재탄생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승공예가로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앞으로도 꾸준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자 하며, 계속해서 후배를 양성하고 교육함으로써 많은 계승자를 만드는 데 힘쓰고자 합니다. 또한, 훗날에는 개인 박물관을 열어 그동안의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지승공예의 전통기법과 미학적 가치를 현대에도 재조명하고 미래로 계속 이어가게 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지승공예의 전통기법과 미학적 가치를 현대에도 재조명하고 미래로 계속 이어가게 하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6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당당히 강원대학교 신입생이 되셨습니다. 대학진학을 결정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주로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한 10여 년 전쯤 이곳 강원도 화천의 비수구미마을에 새롭게 터를 잡게 됐습니다. 화천내에서도 특히 청정자연을 갖춘 오지마을에 터를 잡으면서 작지만 직접 농사도 짓게 되었죠. 농사를 짓다 보니 작물 재배의 학술적인 이론을 비롯해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전문 기술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그래서 적지않은 나이지만 이제라도 대학에 입학하여 배움의 길을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사실 대학 입학은 제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었던 오랜 꿈이기도 했습니다. 평생 지승공예가로 살며 나름대로 많은 성취를 이루었고, 부끄러움 없이 성실한 삶을 일궈왔지만 여전히 못다 피운 학업에 대한 꿈이 늘 미련으로 남았죠. 아내에게 넌지시 "대학에 들어가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더니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본인도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은 꿈이 있다고 하더군요. 함께 의기투합하여 준비를 시작했죠.

우리대학으로 진학을 결정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으며, 대학 입학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대학에 입학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로 오직 강원대학교만 목표로 두었습니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국가거점국립대학이고, 특히 제가 진학하고자 했던 농업생명과학대학은 7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죠. 사실 대학 진학을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전혀 정보가 없었습니다. 아내와 손을 잡고 정말 무모하고 용감하게 일단 강원대학교 대학본부에 방문했습니다. 사전 정보도 없이 그야말로 무턱대고 방문했었는데, 처음 만난 교직원분께서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셨고, 제가 지원할 수 있는 학과와 전형, 필요한 구비 서류와 입시 절차까지 적극적으로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마치 자기 일처럼 진심을 다해서 도움을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하고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덕분에 서류전형부터 면접평가까지 꼼꼼하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 지승공예가로 살며 나름대로 많은 성취를 이루었고, 부끄러움 없이 성실한 삶을 일궈왔지만 여전히 못다 피운 학업에 대한 꿈이 늘 미련으로 남았죠."

대학 합격이 결정되고 나서 기분이 어떠셨나요?
제가 지나 40여 년간 지승공예를 하면서 참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상을 받았던 때보다도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더 큰 기쁨과 환희를 느꼈습니다. 정말 날아갈 듯 했죠. 지금은 돌아가신 저희 아버님께서 당시에 병환으로 입원해계셨는데, 제 소식을 듣고 너무나 감동하고 기뻐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본인의 대를 이어 지승공예가가 된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동시에 대학에 보내주지 못한 것이 평생 한이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거든요. 아버님의 소원을 이뤄드린 것 같아서 뿌듯하고 뭉클했습니다. 아내도 강원대학교 녹색생명산업정책대학원에 합격하여, 나란히 강원대학교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다시금 배움의 길을 걷는 것이 쉽지만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학업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60세의 나이에 비로소 진정한 배움의 기쁨을 알게 됐죠. 보통 젊은 나이에는 취업이나 생계에 대한 부담을 안고 일종의 의무감으로 학업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저에게 배움은 오직 배움 그 자체의 보람과 즐거움으로 가득했습니다. 배움을 통해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다양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이를 스스로 갈고 닦는 과정을 통해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보람과 성취도 경험할 수 있었죠. 물론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분야를 배우려다 보니 어려움도 있었지만, 남들보다 두 세배 더 노력하겠다는 마음으로 공부한 결과 성적우수장학금도 두 차례나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궁금한 것이 생기면 다시 일어나 책을 펼치는 일이 잦아졌고, 시험기간에는 아내와 함께 새벽 늦게까지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누가 시켜서라면 이렇게 못 하겠죠. 배움을 통해 익히고, 성찰하며, 성장하는 그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입니다.

"배움을 통해 익히고, 성찰하며, 성장하는 그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입니다."

지난 2년간의 대학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어떠한가요?
마침 제가 입학하던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인해 학업 및 대학생활의 많은 부분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진 것이 참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점차 대면수업을 늘리고, 실습도 진행하면서 교수님이나 동기들과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았습니다. 과대표도 맡게 되었고, 동기들과 함께 단체로 학과 점퍼도 맞춰 입고, 식사도 같이 하며 돈독한 정을 쌓았습니다. 강원대학교 학생증을 내밀 때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행복을 느낍니다.

얼마 전 대학발전기금으로 2천만 원을 기부하셨습니다. 어떤 동기로 기부를 결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학교를 다니다 보니 감사할 일이 참 많더군요. 늘 좋은 환경, 좋은 시설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주는 대학에도,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시고 도움을 주시는 교수님들께도, 한마음 한뜻으로 배움의 뜻을 펼치는 동기들에게도 언제나 깊은 애정과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담아 제가 무언가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발전기금 기부를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며, 우리대학과 학과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부를 하고 나니 기부는 나눔보다 더 큰 보람과 행복을 돌려받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계속 기부를 실천하고 싶은 마음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 발전기금 기부를 계기로 학과 교수님들과 식사를 할일이 있었는데, 그때 교수님들께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 · 박사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시겠다며 응원해 주셨습니다. 계속해서 깊이 있는 배움을 이어가고, 언젠가 제 이름을 건 작물 품종까지 개발해보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입버릇처럼 "꿈은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꿈을 품고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사람에게 나이는 결코 한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 증명해낼 것입니다.

"꿈을 품고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사람에게 나이는 결코 한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 증명해낼 것입니다."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폼